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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우체국의 이미지를 일신한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
등록일 2015. 11. 10.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NO.76 우체국의 이미지를 일신한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

1994년 10월 어느 날 우정국 영업과장 서광은이 창구담당계장 정동호를 불러 물었다.

"정 계장, 당신이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뭐요?"

"제가 맡고 있는 업무는 우체국 직원 피복업무하고 별정우체국과 우편취급소 업무 아닙니까."

과장의 느닷없는 질문에 정동호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당신이 창구계장이니까 우체국 창구업무도 맡고 있잖아?"

"네. 그렇습니다."

"그 동안 우편업무 전산화는 전산담당계에서 맡아 왔는데, 앞으로는 각 분야별로 나누어 추진하기로 했어요. 따라서 우체국 창구업무는 당신의 소관 사항이니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는 당신이 책임지고 맡도록 해요."

"아니, 과장님, 우편업무 전산화를 각 분야별로 나누어 추진하는 건 좋은데, 제가 '전산'의 '전'자도 모르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 제가 어떻게 전산업무를 맡습니까. 아무래도 그 말씀은 재고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동호는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전산업무를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전산업무 같은 새로운 분야의 업무는 누구나 배우면서 시작하는 거라고. 원칙은 이미 정한 거니 그대로 맡아서 하도록 해요."

서광은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정동호는 볼멘소리로 대꾸하고 과장실을 나왔다. 당연히 맡아서는 안 될 업무라 생각했으나 강한 어조로 지시하는 과장과 더 이상 맞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지시와 복종 일변도로 끝났다. 그러다 보니 과장 서광은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가 바라는 바는 전산업무에 대해 백지나 다름없는 계장 정동호에게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전문 분야의 업무를 추진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 같은 전문 분야의 일은 데이콤과 같은 용역회사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그가 바라는 바는 우체국 창구업무를 맡고 있는 실무 책임자이니 만큼 창구업무 전산화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그 방향을 모색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체국 창구환경 개선업무는 창구담당계에서 맡고 있어 그 부서에 전산화 업무까지 가미함으로써 우체국의 이미지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1990년대 우정사업에서의 핵심적인 변화 중의 하나는 우체국의 이미지 쇄신이라 할 수 있다. 고객의 눈에 비친 우체국의 모습이 놀랍도록 새로워져 서비스 측면에서 곧잘 비교 대상이 되곤 했던 은행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우체국 창구환경의 개선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우편업무의 전산화를 들어야 한다. 그 동안 우표 판매 따로, 소포우편물이나 등기우편물 접수 따로 운영하고 있던 우체국 창구업무를 창구 직원이면 누구나 한 자리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소위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실시하게 되면서 우체국을 보는 이용자의 시선이 따뜻해졌던 것이다. 일명 '만능창구'라 불리기도 한 원스톱 창구를 운영하게 되면서 우체국이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우체국 창구업무의 전산화였다.
우체국 종합정보서비스의 전산화로부터 시작된다

우체국 창구업무의 전산화는 영업과장 서광은이 창구담당계장 정동호에게 그 업무를 맡으라고 지시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체신부가 그 작업에 착수한 것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체국 종합정보서비스계획의 전산화'라는 명칭으로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기로 한 것은 1989년 12월이었다. 그 계획은 1990년 체신부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연구 용역을 주면서 구체화되었다.

종합계획 자체가 방대한 것이어서 그것을 추진하는 조직 역시 몇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위로는 체신부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본부 실장ㆍ국장을 위원으로 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3개월에 한 번씩 회의를 개최했고, 그 밑에는 기획관리실장을 위원장, 각 국의 과장을 위원으로 하는 실무추진반을 구성하여 매달 회의를 개최하며 사업의 추진 상황과 문제점 등을 점검했다. 실무기구로는 체신부와 전자통신연구원, 데이콤, 한국통신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개발단을 구성하여 종합계획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연구 용역을 맡은 전자통신연구원은 1990년 1월 연구원 김혜규, 인소란, 안병석, 김현수 등으로 팀을 구성하여 서울사무소에 연구개발단을 설치했는데, 그때 연구사업 책임자로 선정된 사람이 홍성원 박사였다. 홍성원은 오랫동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활약하며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을 주도한 바 있어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체신부는 우편업무에 밝은 사무관 정순각과 전산 실무자인 주사 심재민을 파견하여 연구개발단에 합류시켰다.

연구개발단 멤버 가운데 우편업무와 전산업무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은 직위가 가장 낮은 심재민이었다. 심재민은 1983년 체신부가 실시한 PC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연구개발단이 출범할 무렵 추진위원장인 체신부차관 신윤식이 그를 발탁하여 프로젝트에 투입했던 것이다.

연구개발단은 우체국 업무를 우편, 체신금융, 전파관리, 사무자동화, 생활정보서비스 등으로 나누어 전산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그 해 4월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지의 우체국을 시찰하며 선진국에서는 우체국업무 전산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각 분야별로 전산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체크하자, 체신금융이나 전파관리 분야는 전산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으나, 우편 분야는 완전히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우편업무 전산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하고 종합계획안을 작성하여 체신부 추진위원회에  보고했다.

종합계획의 핵심이 우편업무 전산화였기에 1991년 4월 주관 부서를 기획관리실 경영분석담당관실에서 우정국 우정기획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별정우체국 업무를 담당하던 사무관 최명수와 주사 심재민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우편업무 전산화는 심재민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1994년 5월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고 우편물 검열제도가 폐지되면서 우편물 검열업무를 맡고 있던 우정연구소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우정국의 일부 기구의 개편이 불가피했는데, 그때 국내우편과가 영업과와 운용과로 분리되면서 우정기획과의 소관 업무이던 우편업무 전산화가 영업과로 이관되었다. 이에 따라 사무관 왕진원과 주사 심재민이 그 소속을 영업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같은 변화를 겪는 동안 우편업무 전산화는 우체국 창구업무의 전산화, 우체국 행정업무의 전산화, 우편작업관리의 전산화, 우체국의 지역정보센터화, 우체국의 종합봉사창구화 등 5개 분야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우체국 업무 중에서도 등기우편과 우체국 안내시스템 관련 업무에 관한 소프트웨어 개발은 일찍 이루어져 1991년 10월 서울중앙우체국과 광화문우체국을 시범우체국으로 지정하여 시연회를 가졌고, 이듬해 6월에는 시범우체국을 20개국으로 늘리기도 했다. 이어 1992년 국내특급우편과 국제특급우편, 1993년 국제소포우편과 국제등기우편, 1994년 우표류의 관리, 행정관리업무 및 작업관리업무의 전산화, 1995년 만능창구 시스템 등을 개발하여 시험운용을 하고 취급관서를 늘리면서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그처럼 우편업무 전산화계획은 1992년부터 1994년까지를 기반구축단계로 삼고 전국의 3000여개 우체국을 전산망으로 연결함으로써 우체국을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기관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는 원스톱 창구를 만드는 것이다

1994년 말 영업과장 서광은이 창구담당 사무관 정동호에게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를 맡도록 지시하면서 우체국업무 전산화는 이원화되었다. 5개 분야로 나누어 추진하던 우체국업무 전산화 중 창구업무 전산화는 창구담당계장 정동호가 맡고, 나머지 4개 분야는 종전대로 우편업무전산화담당 사무관 왕진원이 맡았다. 그 부서에서 맡고 있던 우편작업 기계화와 우편업무 전산화 중에서 우편업무 전산화는 주사 심재민이 맡고 있었다.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의 핵심은 하나의 창구에서 고객이 원하는 우편물의 접수 업무를 모두 처리해 주는, 소위 '원스톱 창구'라 불리는 '만능창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창구 하나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는 뜻에서 '다기능창구'라 불리기도 했다. 그와 함께 우편물의 접수 업무를 기계가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무인우편창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였다.

"제가 정동호 계장에게 바랐던 것은 원스톱 창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창구업무 전산화의 목표는 하나의 창구에서 고객이 바라는 모든 우편업무를 처리해 주는 소위 원스톱 창구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전에는 우표 판매자는 우표만 팔고 소포 접수자는 소포만 접수했는데, 그러다 보면 고객에게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인력 낭비가 불가피했어요. 따라서 모든 창구 직원이 단말기 한 대 가지고 우편창구에서 취급하는 모든 우편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산화가 전제되어야 했던 거죠."

영업과장 서광은의 말이었다.

대전 둔산우체국

만능창구네 무인우편창구네 하는 시스템의 개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왕진원ㆍ심재민 팀이 추진하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시험운용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잡이가 된 정동호 계장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전산에 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는 데다 같이 일할 직원도 없었다.

"전산업무를 취급하려면 전산을 아는 실무자가 필요한데, 그런 인원도 주지 않으면서 추진하라는 거였어요. 당시 제 밑에는 직원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별정우체국과 우편취급소 업무를 맡고 또 한 명은 피복과 친절봉사 업무를 맡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전산에는 관심들이 없었죠. 게다가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어요. 참고 자료라 해서 받은 게 국장과 과장이 선진국 우체국 견학할 때 찍어온 창구 사진 몇 장이 전부였어요. 단순한 창구 사진 가지고 논스톱 창구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해외 견학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하자 창구업무 전산화 추진하기도 바쁜데 어디 출장을 가느냐며 핀잔만 받았어요. 때문에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그 업무를 맡았던 거죠."

영업과 창구담당계장 정동호의 말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해법을 제시한 사람은 과장 서광은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뭉그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딱했던지 서광은은 별도의 팀을 구성해 업무를 추진하라고 일렀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지시였다. 사무관 왕상옥을 반장으로 하는 전산추진반을 구성하여 그 업무를 맡겼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산이라는 분야는 필요한 인원의 머리 숫자를 채웠다 해서 업무가 굴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를 확보하지 않는 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그 분야의 속성이었다.

그처럼 당시까지만 해도 전산은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웬만큼 머리 좋은 사람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고도의 첨단 분야였다. 그러다 보니 본부에 근무하고 싶어 그 자리를 지원했던 사람도 다른 자리가 생기는 대로 떠나곤 했다.

"우편업무 전산화는 업무 자체도 어려웠지만 부수적인 업무 때문에 많은 시달림을 받았어요. 매년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재경원을 드나들어야 했고, 예산을 쓰고 나면 국회에 보고해야 했고, 감사원 감사도 매년 받아야만 했어요. 그 때마다 왜 그 많은 예산을 쓰며 전산화를 해야 하느냐며 시달림을 받곤 했죠. 때문에 그 업무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발령받은 사람은 많은데, 기회가 생기는 대로 도망가 버리곤 했죠."

10여 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키며 전산업무를 담당했던 주사 심재민의 말이었다.

한시적인 조직인 전산추진반이 제 역할을 했든 못했든 우체국창구업무 전산화라는 중요한 과제를 추진해야 할 책임은 창구담당계장 정동호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원스톱창구 내지 다기능창구라 불린 만능창구의 구축이었다. 그는 먼저 전산화가 필요한 우체국 창구업무를 종류별로 나누어 업무 추진체계를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이어 전산화 추진 사업자로 데이콤을 선정하여 각 업무별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한편, 전산관리소 우편전산팀과 공동 작업으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또한 원스톱창구를 만드는데 필요한 단말기와 프린터, 전자저울 등의 납품업체를 선정하여 초기 전산화를 시작했다. 서울송파우체국을 시범우체국으로 지정하여 시험운용을 했다.

우편물의 접수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무인우편창구 시스템의 개발도 동시에 추진했다. 그 시스템은 이전에 전자통신연구원에서 카이스트에 용역을 주어 시제품을 만들고 시험운용까지 거쳤던 것인데, 정동호 팀이 다시 시작하면서 개발업체를 데이콤으로 바꾸었다. 데이콤에서 또다시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운용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처럼 정동호 팀이 1995년부터 다시 시작한 우체국 창구업무 전산화는 이듬해 초에는 시험운용이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으나, 이후에도 보완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1995년에는 만능창구 카운터를 제작하여 전국 우체국에 설치하면서 만능창구 단말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전국의 주요 우체국 25개국을 선정하여 시험운용을 했다. 그처럼 우체국의 모습을 일신한 만능창구 구축작업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1990년대 후반 내내 계속되었다.

PDA 보급으로 우편업무 전산화를 마무리하다

우체국에서 만능창구를 운영하게 되면서 달라진 우체국 창구 모습의 하나는 우편요금증지의 등장이었다. 스티커 형식으로 간단히 붙일 수 있는 우편요금증지는 만능창구를 운영하면서 우표 대용으로 사용했다.

무인창고우편

우체국 만능창구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단말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기능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만능창구를 운영하게 되면 우편물의 종류와 중량에 따라 우편요금이 달라지므로 우체국 창구에는 여러 종류의 우표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처럼 우편요금이 달라짐에 따라 여러 종류의 우표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우편요금을 즉석에서 인쇄하는 우편요금증지였다.  

우편요금증지의 사용은 고객에게도 편리함이 있었다. 우편요금에 맞춰 여러 장의 우표를 붙일 필요가 없는 데다 일일이 풀을 묻혀 우표를 붙이는 번거로움도 덜어 주었다. 우표를 제작할 필요가 없어 우편사업의 예산을 절감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우편물에 우표를 붙이지 않는 것은 우표 수집이 취미인 우표수집가에게는 매우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동호팀이 만능창구와 무인우편창구 시스템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 나머지 우편업무의 전산화를 맡고 있는 심재민팀은 기타 우편업무 전산화에 매진했다.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집배원들에게 한 대씩 나누어준 개인정보단말기(PDA)의 보급이었다.  

그 동안 우편업무전산화팀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주사 심재민이 이끌고 있던 우편업무전산팀에 전산사무관 유극현이 합류하여 팀을 이루었다. 유극현은 총무처에서 오랜 기간 국가고시 채점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 운용한 바 있는 전산 분야의 베테랑으로 1996년 8월 정보통신부로 자리를 옮겨 우편업무 전산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했기에 막중한 사명감으로 그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집배원에게 PDA를 한 대씩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발상을 한 사람은 우편업무 전산화의 주역인 심재민이었다. 우편업무 전산화는 우편물의 최종 처리자인 집배원을 제대로 활용할 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고, 집배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면 컴퓨터의 기능을 갖춘 정보기기의 보급이 필수적이라 생각했기에 그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PDA였다. 대민봉사의 첨병인 집배원이 정해진 배달순로대로 움직이기보다 우체국이나 고객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인텔리전트하게 업무를 처리할 때 비로소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대민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PDA는 필수품이라 생각했다. 미국 출장기간 중에 그 곳 집배원들이 PDA를 가지고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의 필요성을 확신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PDA 보급은 쉽지 않았다. 전국의 집배원에게 PDA를 한 대씩 나누어 주려면 최소한 1만 5000대가 필요했다. 당시 국내에는 PDA를 생산하는 회사가 없었다. 그렇다 해서 40억 원이나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외제 구입에 쏟아부울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PDA의 국내 개발이었다. 전산화담당팀은 관련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PDA의 개발을 독려하는 한편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며 개발 의욕을 북돋았다. 그리하여 1999년 집배업무 정보화를 위한 PDA 보급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1만 3000대를 보급할 수 있었다. 그 효과는 집배원 업무 부담의 경감과 우편사업의 예산 절감으로 나타났다.  

"집배원이 하루 평균 취급하는 등기우편물이 40통쯤 되는데, 우체국으로 돌아와 수작업으로 처리하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답니다. 그런 업무를 PDA를 이용하게 되면 수분 내에 마칠 수 있다는 거죠. 그만큼 집배원의 업무 부담을 크게 경감시키는 데다 연간 130억 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용자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고요. 또 종이로 작성해 보관해야 할 문서를 전산으로 처리할 수 있어 보관 시간과 공간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고요."

영업과 전산화담당 사무관 유극현은 PDA의 보급 효과를 그렇게 설명했다. 우편업무 전산화는 그처럼 우편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대민 서비스를 향상시킴으로써 우체국의 이미지를 일신했다는 점에서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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