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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등록일 2022. 6. 8.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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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6-1.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현충일 우표

  6월 6일은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끓는 피를 흘리며 산화(酸華)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이다. 순국선열(殉國先烈)은 나라 위해 목숨 바쳐 먼저 죽은 열사로 나라가 부르지 않았음에도 나라 위해 희생하신 의병이나 의사, 열사를 의미하고, 호국영령(護國英靈)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신 영혼으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쟁에 임한 국군장병이나 경찰, 소방관을 말한다.
  
    현충일을 맞아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가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먼 이국땅에서 희생된 우리 국군장병과 먼 이국에서 와 우리 땅에 산화한 파란 눈의 외국인이다. 이름도 듣지 못한 코리아에 묻힌 이의 아픈 사연이 여기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한 노신사의 이야기다.
  한국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만난 동양인 딜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신사는 “혹시 한국인인가요?” 하고 물었다. “네” 하자, 반갑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노신사는 “큰 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당시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보지도 못했고, 이젠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가볼 수도 없습니다.” 70년도 지난 지금 머나먼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조차 찾지 못한 채 세월이 이렇게 흘러 버린 것이다. 그래도 한국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코리아는 형이 피를 흘려 지켜 준 나라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형이 20살이었으니 어린 동생이 한국을 찾아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형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고 노신사의 가슴에 남아있었다 . 이 말을 흘려듣지 않은 딜러는 자신이 도울 방법을 생각했다. 차량 출고까지 남은 시간이 72시간이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딜러는 노신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형의 이름과 1953년 전사에 집중하여 인터넷과 전화를 돌려가며 수소문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차량을 인도하는 날 오전이 되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딜러는 혹시나 하고 재한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https://www.unmck.or.kr/)에 들어가 보았다.
    유엔군 추모명비 찾기가 있었다. ELLIOTT Roy Douglas.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홈페이지에는 1953년 4월 17일 전사와 묘비 사진까지 있었다. 사진을 현상하여 액자에 담았다. 차를 찾으러 온 노신사에게 액자를 선물하며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줬다.
    그 자리에서 노신사는 액자를 꼭 껴안고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다. “당신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라고 딜러 신상묵 씨는 말을 건넸다.
 
    코리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파란 눈의 젊은이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딜러 신상묵 씨 이야기다. 페이스북에 엘리엇 씨 이야기가 올려지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국가보훈처에서도 이 사연을 알게 되어 노신사를 한국에 초청해 감사함을 전했다. “형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엇 일병이 속했던 캐나다 제2보병대대는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1951년 4월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캐나다는 한국전쟁 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6,791명을 파병했다. 전사 516명, 실종 30여 명, 부상 1,200여 명,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낯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당신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한 마음을 되새겨본다.
  
    체신부에서는 불타는 조국애로 값진 생명을 바친 충혼(忠魂)을 위로하고 조국에 바친 충성심을 기리며 현충일 기념우표를 1961년과 1975년에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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