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빨간 우체통을 만나는 건 이제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 한 통을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는 현대사회,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한 연인 말고 누가 편지를 써서 굳이 우체통에 넣을까. 내가 사는 옥수동에는 우체통이 딱 한 통 남아 있다. 그것도 우체국 바로 앞에.
서울 시내에서 우체통이 빠르게 사라진 건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인도를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인도 10계명’을 발표했다. 인도 10계명은 가로시설물을 비워 보행로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게 골자였다.
당연히 우체통은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꼽혔다. 서울시는 2014년 우체통 390개, 2015년 450개를 제거하는 등 단계적으로 철거 작업을 전개했다. 이후 전국에서 우체통이 꾸준히 사라졌다. 2018년 1만2553개, 2019년 1만1793개, 2020년 1만213개, 2021년 9539개에서 지난해 8619개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우체통 철거는 우편업무규정 제305조의2에 규정된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3개월간 수집물량이 10통 이하거나, 통행 방해로 철거 요청 민원이 있는 경우, 집배구 운영상 우체통 자체가 불필요한 경우, 관할 우체국장이 철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다.
이미 우체통의 일반우편 처리 기능은 거의 소멸한 상태다. 일반통상우편물 물량 자체가 2018년 304만933통에서 지난해 229만7509통으로 계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우체통 8000여개는 우편물보다 ‘습득물 처리’ 수거함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카드 등 길거리에서 습득한 분실 물건을 우체통에 쏙 넣기만 하면 주인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신용카드 49만 장, 지갑 9만3551개를 비롯해 모두 75만6600개의 분실물이 우체통을 통해 처리됐다.
최근에는 우체통이 폐의약품 회수 수거함으로 변모했다. 폐의약품은 토양 및 식수를 통해 인체에 재유입되면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분리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수거함 접근이 어려워 폐의약품 수거가 원활하지 않았다.
이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월 우체통에서 폐의약품을 회수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8월 말 기준 올해 전국 수거함에서 모두 7712건의 폐의약품을 회수했는데, 이중 우체통에 버려진 폐의약품이 전체의 82%인 6346개에 달했다. 약국(899개), 보건소(96개), 주민센터(316개), 관리사무소(41개), 기타(14개) 등의 수거함보다 길거리 우체통에 폐의약품을 버리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반 우편봉투에 ‘폐의약품’이라고 적어 가까운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간단하게 폐의약품을 처리할 수 있어 우체통을 수거함으로 이용하는 일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체통에서 회수된 폐의약품은 우체국 우편서비스를 통해 자치구로 전달된다.
문제는 우체통 자체가 많지 않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폐의약품을 버리기 전 ‘인터넷우체국 우체통 위치정보 알리미 서비스’를 활용하면 좋다. 가장 가까운 우체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