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현관문에서 정확히 백 열 걸음쯤 가면 빨간 우체통이 하나 있다. 꽃 진 자리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밤이 되면 더욱 외로워 보여 어떤 날은 독거노인 같다가 또 어떤 날은 붙박이 병정 같다. 그동안 보고 들었을 마을의 소문과 무수한 사연들 다 잊었다는 듯 가타부타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강가에는 / 키가 작은 빠알간 우체통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 섶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오며 사랑이 익어가고 /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늘을 넘어 남자의 편지가 가고 / 저녁 물소리로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답장이 / 밤마다 강을 건너가는 것을 우체통은 알고 있었습니다(중략)/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 우체통은 가슴이 늘 벅차올랐습니다” (도종환 ‘우체통’)
돌아보면 우체통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해주던 가슴 벅찬 ‘왕년’이 있었다. 기쁜 소식엔 함께 웃고 가슴 철렁 내려앉는 소식엔 함께 한숨지으며,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아린 마음을 위로해 주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우리들의 우체통’은 1993년 5만7599개를 정점으로 급속하게 사라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와 e메일, 문자메시지 알림소리가 커질수록 우체통은 왜소해졌다. 2000년대 들어 급감하던 우체통 수는 2004년 3만3544개, 2008년 2만3761개로 줄더니 2013년엔 급기야 1만9121개로 쪼그라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체통은 백일장의 단골 시제다. 동시 몇 편만 읽어 보면 우체통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비가와도/ 꼼작도안코 / 눈이와도 / 꼼작도안는 / 길거리 우체통 / 빩안 우체통. / 빩아숭이 알몸둥이 / 춥지도 안흔지 / 눈보라 사나운데 / 오두머니 서서잇구나 / 난네가 참말용-트라 / 난네가 제일장-트라.” 1930년대 한 일간지에 실린 동시다. 우체통에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이 뚝뚝 묻어난다.
요즘 동시에 비친 우체통은 어떤 모습일까. “초등학교 문방구 앞 / 빨간 우체통이 쉰 목소리로 / 말을 한다 /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는데 / 내 입에 거미줄 치는 걸 보면 / 나도 다 살았다” (정연철 ‘우체통의 마지막 말’) 이 정도면 탄식이라 해야겠다. 우정사업본부의 통계를 보면 이해가 된다. 우체통 수뿐만 아니라 우체통 한 개당 하루 평균 우편물 수도 급속하게 줄고 있다. 전산통계가 시작된 2004년에 21.7통이던 것이 2013년 8통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가 속도에 치여서 아등바등할수록, 더 솔직히 말해 속도에 미쳐서 달릴수록 우체통은 더욱 야위어 갈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문재 ‘푸른 곰팡이-산책시1’)
느림과 기다림과 두근거림을 잃어버린 시대, 야위어 가는 것이 우체통뿐이겠는가. 우체통이 던지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겠다.
이번 주말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통을 찾아보자. 우정사업본부(www.koreapost.go.kr)나 각 지방우정청 및 우체국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우체통위치정보 알리미 서비스’를 클릭하면 전국의 우체통 위치를 손금 보듯 할 수 있다. 빨간 우체통을 보거든 마음에 담아올 일이다. 혹시 누가 아는가, ‘그대에게로 한 사나흘 걸어온’ 연둣빛 봄 편지 한 장 툭, 하고 배달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