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무엇일까. 조선의 문신이자 외교관인 홍영식은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고종에게 조선도 서양의 우편제도를 도입해 실시할 것을 건의했다. 고종은 홍영식을 우정총국 총판으로 임명해 우편제도 도입을 추진하도록 했다.
홍영식은 태극 모양의 우표 도안을 완성했으나, 조선에 마땅한 인쇄시설이 없는 탓에 일본의 ‘대장성 인쇄국’에 우표제작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의뢰한 우표는 모두 5종이었다.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 등 총 5종의 우표는 그러나 제대로 된 쓰임을 갖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혔다. 잠깐 여기서 ‘문(文)’은 당시 조선의 화폐단위다. 1문은 1푼을 뜻했다. 즉 5푼, 10푼, 25푼, 50푼, 100푼짜리 등 가격에 따라 우표를 제작한 것이다.
우정총국이 일본 인쇄국에 의뢰한 5종의 우표는 제때 조선에 도착하지 못했다. 우정국 개국일인 1884년 음력 10월 1일(양력 11월 18일) 도착한 우표는 의뢰한 280만 장 가운데 5문·10문 단 2만 장에 불과했다.
나머지 3종은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쇄된 이후인 1885년 3월에야 도착하면서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쓰이지 못한 채 기록으로만 남았다.
발행된 2종의 우표들 역시 우정 업무를 처음 시작했던 한성(서울)과 제물포(인천) 사이에 오고 간 우편물에 사용됐으나 발행 21일 만에 사용이 중지되면서 이 역시 비운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최초의 우편엽서는 1900년 5월 10일 ‘우체엽서’라는 이름으로 발행됐다. 우체엽서가 기존의 우편 방식과 달랐던 점은 종이가 귀한 시대에 종이를 절약하기 위해 봉투에 넣지 않고 부칠 수 있는 카드였다는 점이다. 이 역시 서양의 우편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우리에 앞서 1869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먼저 쓰였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구한국시대의 엽서는 국내통상(1전), 국내왕복(2전), 국제통상(4전), 국제왕복(8전)의 4종이다. 제1차는 1900~1901년에 국내 인쇄로, 제2차는 1903년 6월 1일에 독수리우표와 함께 프랑스 인쇄로 각각 발행됐다.
우표요금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했다. 1945년 8월 15일 편지 기준 10전이던 우푯값은 1947년 화폐단위 변화로 1원이 됐다. 우표는 1950년까지 2원, 4원, 15원, 30원으로 점점 값이 올랐다. 당시 1원은 100전의 화폐 가치가 있었다.
우푯값은 1952년 9월 기준 1000원까지 올랐다.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으로 1953년 2월 15일부터 우표 한 장의 값이 10환이 됐다. 물론 10환이 1000원과 같은 가치인 만큼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었다. 우푯값은 1957년 40환까지 올랐다가 1962년 6월 10일 10환을 1원으로 하는 화폐개혁으로 1장당 4원으로 화폐단위가 바뀌었다. 이때의 ‘원’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단위다.
40년간 몸값이 계속 오른 우표는 2004년 11월 처음으로 220원까지 상승했으며, 현재는 1장당 430원에 판매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공식적인 우표는 3500종이 넘는다. 엽서는 2100종 이상 발행됐다. 매년 새로운 우표와 엽서가 발행되고 있다.